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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비공식작전 흥행하지 못한 이유?

by 수르 2024. 9. 29.

영화 비공식작전 포스터
영화 비공식작전 포스터

 

영화 비공식작전 시놉시스 1987년, 5년째  ("비공식적으로? 알아서 해라? 여기는 하루하루가 지뢰밭이에요")

 

1987년, 5년째 중동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외교관 '민준'(하정우)은 어느 날 수화기 너머로 20개월 전 레바논에서 실종된 외교관의 암호 메시지가 들려온다. 성공하면 미국 발령이라는 희망찬 포부에 가득 찬 그는 비공식적으로 동료를 구출하는 임무에 자원해 레바논으로 향한다. 공항 도착 직후, 몸값을 노리는 공항 경비대의 총알 세례를 피해 우연히 한국인 택시기사 '판수'(주지훈)의 차를 타게 된 '민준'은 갱단까지 돈을 노리고 쫓는 지뢰밭 같은 상황 속에서 기댈 곳은 유일한 한국인인 '판수'뿐이다. 그런데 돈만 주면 뭐든 하는 수상쩍은 이 인간, 과연 함께 동료를 구할 수 있을까?

 

영화 비공식작전 흥행하지 못한 이유는? 

 

8월 11일, 하정우와 주지훈은 성시경의 유튜브 채녈에서 영화 <비공식작전> 홍보를 위해 출연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두 배우는 평단과 실관람객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흥행이 저조한 이유를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그들은 술자리에서 감정이 격해져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댓글에서는 주연 배우 두 명의 마약 전과가 관람을 꺼리게 만든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며, 관객과 배우 간의 시각 차이를 드러냈습니다. 또한, 영화가 <교섭>이나 <모가디슈>와 비슷한 스타일이라는 점도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특히 하정우가 해외에서 고생하며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콘셉트가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과 겹치는 점도 흥행에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비공식작전>은 택시기사 캐릭터를 중심으로 카 체이싱에 중점을 두어 액션 영화로 차별화를 시도했지만, 겹치는 이미지 때문에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하정우는 영화에 대해 "장점도 단점도 없다"고 언급하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관객들이 높은 관람료에 비해 극장에서 볼 가치가 있는 영화만 선택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로 인해 무난한 영화가 오히려 관객의 발길을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공식작전: 실화와 극화의 경계

 

김성훈 감독은 영화 <비공식작전>에 대해 "실화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각색하여 극화된 드라마"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영화의 제목이 원래 "피랍"에서 "비공식작전"으로 변경된 이유와 관련이 있습니다. 감독은 "피랍은 영화의 동기였고, 초반에는 이 제목을 사용했다"며 "이후 이야기는 비공식 작전을 통해 전개된다"라고 밝혔습니다. 구출을 시도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창작된 요소가 많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실화의 재현에 있어서는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해당 사건은 기밀 문서로 묶여 있어 정보가 제한적이지만, 당시 자료를 기반으로 철저한 고증 작업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도재승 서기관이 탔던 차량의 종류와 색상, 총알의 방향 등도 정확히 재현하려 했습니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장면은 이러한 고증을 바탕으로 실감 나는 생동감을 주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오래된 사건이다 보니 모든 세부 사항을 고증할 수 없었습니다. 감독은 "1986년과 1987년의 모습을 최대한 고증했지만 미진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중요한 차량인 판수가 몰고 다니는 벤츠는 1989년 모델로 설정했으며, 당시의 차량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영화에는 전두환 정권을 대표하는 안기부 부장 역할이 등장하며, 이 역할은 배우 김응수가 맡았습니다. 김 감독은 "1980년대 안기부는 매우 강력한 존재였다"며 "무겁고 어두운 면뿐만 아니라 희화적이고 아이러니한 요소도 담고 싶었다"라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습니다. 김응수 배우는 이러한 면에서 카리스마와 유머를 동시에 지닌 인물로 적합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전두환 정권과의 불편한 진실 : 비공식 작전의 이면

 

1986년 도재승 서기관 피랍 사건은 한국 외교관 도재승이 리비아에서 납치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한국 정부와 전두환 정권에 큰 충격을 주었고, 도 서기관의 구출 과정은 복잡하고 비밀스러웠습니다.

 

1998년 신동아는 익명의 제보를 통해 도 서기관의 비공식 구출작전이 정보기관 출신 미국인 리처드 롤리스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롤리스는 당시 삼성중공업 고문을 통해 한국 외무부와 접촉했고, 납치범의 요구액인 1000만 달러를 500만 달러로 낮추었습니다. 그 후, 도 서기관의 생존을 확인한 롤리스는 250만 달러를 전달했습니다.

 

납치범들은 나머지 250만 달러를 요구했으나, 전두환 정권은 돈을 지급하지 않았고, 결국 롤리스의 친구가 자신의 돈으로 잔금을 치르고 도 서기관을 무사히 데려왔습니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은 끝내 그 친구에게 돈을 갚지 않았습니다.

 

1987년, 도 서기관의 석방이 급히 이루어진 이유는 대선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에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도재승 서기관은 1987년 11월 3일, 피랍 21개월 만에 한국에 돌아왔고, 그의 귀국은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습니다.

 

영화 《비공식작전》은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안기부의 희화적인 모습을 그리며, 외교관 구출 작전에서 정부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강조합니다. 도재승 서기관은 이후 중동에 재직하게 되었으며, 납치의 고통을 잊고 싶다고 밝혔습니다.